'차붐의 영웅시대'는 이제 1977년으로 넘어간다. 1977년은 월드컵의 해였다. 적어도 한국축구에게 있어서는 그랬다.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이 일년내내 벌어지면서 축구팬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한국축구는 또다시 월드컵본선 진출의 대망을 품고 77년 한해를 내달렸다. 차범근은 바로 그 맨 앞에 있었다. 주간스포츠 1월 5일자 신년호에서 특집화보로 다룬 '새해의 꿈'은 한국축구의 이런 소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차범근이 월드컵을 번쩍 치켜들었다. 하지만 모조컵을 이용한 연출사진이었다. 한국축구에 이런 일이 언제쯤 가능할까. |
주간스포츠는 77년 3월 9일자에 100호특집으로 당시 가장 인기있던 차범근 염동균 펠레(오른쪽부터)를 동시에 표지 인물로 내세웠다. |
차범근은 여전히 월드컵의 꿈을 꾸고 있다. 기자는 지난 2월 수원삼성의 가고시마 전지훈련 캠프를 동행 취재했다. 차범근 감독과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때에도 '차붐'은 월드컵의 꿈을 이야기 했다. 당시 스포츠서울에 쓴 기사를 잠시 인용해본다.
<차 감독의 마음속에는 꽁꽁 숨겨놓았던 꿈이 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국내 축구의 현실에서 보면 황당하게도 들리는 이야기지만, 차 감독은 매우 진지하게 이 꿈을 생각하고 있다. 지난 1978년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독일에 진출했을 때의 이야기를 했다.
"최근 어느 팬이 인터넷에 당시 내가 독일로 떠나면서 인터뷰했던 동영상을 어떻게 구해서 올렸다. '선진축구를 배우고 나서 후진 양성에 힘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정말 그런 말을 했었다. 지금 약속을 지켰다고 자부한다."
그가 만든 '차범근 축구교실'은 벌써 18년의 연륜이 쌓였다. 이제 '차범근 축구교실'의 이름 아래로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팀까지 만들어져 있다. 처음 축구교실이란 것을 만들었을 때는 생소했던 개념이었지만 이제는 곳곳에 축구교실이 생기고 어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볼을 차고 있다고 설명할 때는 '먼저 간 사람'다운 긍지를 숨기지 않았다. 차 감독은 "(대중화된)축구교실을 통해 어릴 때부터 성장한 아이들 가운데 재능이 있는 선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 나가면 된다. 이렇게 쌓이고 쌓이면 내 세대가 아니더라도 어느 세대에서는 월드컵 우승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30여년전 '모조 월드컵'을 치켜들고 새해 소망의 화보를 찍었던 청년 차범근은 이제 50대 중반의 나이에서도 여전히 월드컵을 꿈꾸고 있었다.
주간스포츠 77년 3월 23일자는 이스라엘과의 맞대결을 앞두고 양팀의 주전 멤버를 커버에 실었다. 가운데가 차범근이며 오른쪽은 김강남 정남 쌍둥이 형제들이다. |
지금은 아시아에 4.5장의 티켓이 주어지지만 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에서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국가를 합쳐서 단 한 자리가 주어졌다. 지금보다 휠씬 더 월드컵 무대를 밟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생각해보라. 2010 남아공월드컵에 아시아에서 단 한 나라만 나설 수 있다면 한국이 출전한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아마도 많은 축구팬들이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 것이다. 당시에는 월드컵에 출전하기가 어려웠고, 그만큼 본선을 향한 국민적 열망도 컸다.
77년의 지역 예선은 두 단계로 걸쳐서 진행됐다. 아시아지역 예선이 4개조로 나눠 먼저 벌어진 뒤 각조 1위팀이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최종예선에서는 아시아 4개팀과 오세아니아대표 1개팀 등 총 5개팀이 홈 앤드 어웨이로 바늘구멍같은 아르헨티나행 티켓을 다퉜다. 한국은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이스라엘 일본과 함께 2조에 배정됐다.
최정민 감독이 이끌던 한국은 2월 27일 이스라엘과 원정경기서 0-0으로 비긴 뒤 3월20일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3-1로 대승을 거두며 아르헨티나월드컵을 향한 힘찬 행군을 시작했다. 주간스포츠는 이스라엘전이 끝난뒤 승리에 도취할 때가 아니라며 한국팀의 허와 실을 분석하고 있다.
<최은택 전 국가대표팀 코치는 "전체적인 전술에 있어서는 크게 잘못된 것이 없었지만 부분 전술에 있어서는 몇가지 허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최 코치는 그 첫 번째로 "미드필더의 공격 가담이 늦기때문에 차범근이 외로운 상태에 놓일 때가 많이 있었다"고 했다. (중략) 처음부터 "수비벽을 두텁게 했다가 역습의 기회를 살리겠다"(최정민 감독의 말)는 작전이었다면 외로운 차범근을 도와주는 전술도 마련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모처럼 인터셉트해서 때려준 볼을 잡은 차범근이 적진에서 고군분투하다가 공격 찬스를 무위로 끝내 버리는 것은 최 코치가 아니라도 누구나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차범근은 이 경기에서 선제골을 포함해 1골2도움을 기록하며 난적 이스라엘을 3-1로 꺾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세운다. 차범근의 선제골에 대한 평을 들어보자.
<어시스터로서,골게터로서 그의 위치는 이제 더없이 확고부동해졌다. 공백 지역을 차고 달리는 돌파력 하나만 뛰어나다고 혹평을 일삼던 일부 축구인들도 이제는 그의 뛰어난 기량과 툭 터진 경기안(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주간스포츠 4월6일자는 일본과의 결전을 앞두고 양국의 대표 공격수 차범근과 가마모토를 표지에서 대비시켰다. |
주간스포츠 77년 4월13일자 커버는 차범근이 일본전에서 귀중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는 순간을 담았다. |
